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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순종 그리고 영친왕 가계도

oldboy-1 2014. 11. 1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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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둘째 아들 순종

비운의 고종황제와 27대 마지막 황제 순종의 가계도

고종은 1황후 · 1황귀비 · 5후궁에게서 모두 9남 7녀를 생출했으나

이중 3남(순종 · 영친왕 · 의친왕) 1녀(덕혜옹주)만이 성장했다.

대부분 유아로 사망하거나 의혹을 남긴 채 조졸했다.

 ▲ 명성황후는 4남 1녀를 탄출했으나 차남 순종만이 성장해 보위를 이었다.

항문이 막힌 채 태어난 원자(元子·1874)를 당시 개신교 선교사(의사)가 수술하려 했으나

“어찌 감히 왕자의 몸에 칼을 댈 수 있느냐”고 황후가 호통쳐 안타깝게 죽고 말았다.

나머지 3남 1녀는 일찍이 잃었다.

▲ 귀인이었던 영월 엄씨는 을미사변(1895)으로 황후가 시해된 뒤 황귀비로 진봉됐다.

청국·일본·러시아 간의 난마같이 얽힌 안개 정국으로 고종이 러시아 공관에

파천(1896)했을 당시 영친왕 이은(李垠·1897~1970)을 출생했다.

▲ 고종은 명성황후 민씨를 간택하기 전 귀인 이씨를 총애해 사실상의

장남인 완화군을 낳았으나 13세 때 홍역을 앓다 독살 의혹을 남기고 의문사 했다.

또 다른 귀인 이씨는 1남 육을 출생했지만 유모 품에서 원인 모르게 죽었다.

▲ 귀인 장씨가 의화군 이강(李堈·1877~1955)을 낳아 생육하니 곧 의친왕이다.

장씨는 1남을 더 출생했으나 일찍 잃었다.

▲ 직첩을 못받은 정씨도 득남했는데 유아로 사망했다.

▲ 고명딸로 고종황제가 극진히 아꼈던 덕혜옹주(1912~1989)는 귀인 양씨 소생이다.

이름 척(拓). 고종의 둘째 아들. 어머니는 명성황후 민씨.

비는 순명효황후(純明孝皇店) 민씨. 계비(繼妃)는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

1875년(고종 12) 2월 세자가 되었으며 1897년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1907년(융희 1) 일본의 압력과 이완용(李完用) 등의 강요로 헤이그 밀사사건의 책임을 지고

고종이 양위하자 제 27대 순종이 즉위하였다

왼쪽부터 의친왕, 순종 황제,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 셋째아들 영친왕, 고종,

순종 황제의 왕비 순종효황후 윤대비, 의친왕의 왕비 덕인당 김비, 의친왕의 큰아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