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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유래

oldboy-1 2011. 12. 28. 10:06

 

지리산[智異山]의 유래

1967년 12월 국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3개도 1개시 4개군 15읍.면 에 속하는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智異山의 명칭은 -`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수많은 은자들이 이 산에 숨어 도를 닦으며 정진해 왔음을 말해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은 지리산의 산세가 높고 웅대하여 수백 리에 웅거 하는 산으로.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라 하여 두류산[頭流山]

이라고 부른다고 전한다

또한 地理山 혹은 方丈山이라고도 하였는데, 두보의 시중

방장은 삼한 외[方丈三韓外]이다, 라는 주석에서 방장은 바로 지리산을 말한다 고 전한다

항간에는 이 산에 [北極神]이 거주해 수많은 신선들이 모이고

덕망 높은 승려가 거처를 두는 곳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를 증명 하듯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는 약 1천년 전부터

성모사라는 사당이 자리를 지켜왔으며, 그안에는 성모석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또한 천왕봉 에서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노고단에는 남악사가 있으니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三神山]의 하나로 숭상된 영원한 우리 민족의 산이다,

여기에 묘향산의 더하면 우리나라의 [四大神山]이요 구월산을 합하면 5대 신산이 되는데

이 5대 신산에서도 으뜸은 지리산이라고 전해진다

반역의 산, 지리산

지리산은 또한 반역의 산이라고 도 불린다 ,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할 목적으로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릴때 백두산과 금강산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지리산만큼은 거절했다고 한다

때문에 생각이 다르다는 의미를 담아

그이전에는 [ 地理山] 또는 [頭流山]이라 불린 이 산에[ 智異]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리산에는 포유류 46종, 조류 165종, 파충류16종 곤충 2700여종, 어류 42종 양서류 11종이 살고 있다

지명의 유래

먼 옛날 마한 땅의 어느 왕이 진한의 난리를 피해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들어

달의 궁전을 짓고 산기슭에 도성을 쌓았다, 그뒤에 각 능선마다 장수를 파견해 지키게 했는데

그곳이 지금의 달궁 둘레에 있는 정령치, 황령치, 팔랑치, 성삼재라는 곳이다

정장군이 지켰던 능선은 훗날 鄭嶺이라 불리다가 정령치라는 지명을 얻었고 ,

황장군이 지켰던 능선은 黃嶺이라 불리었으며, 바래봉 남쪽의 요충지는 8명의 병사가 수비를 했다해서

지금의 八郞峙라는 지명을 얻게 된다 ,,

성삼재는 성이 다른 3명의 장수가 방어했던 곳이라 해서 姓三峙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을 잇는 성삼재 종단도로는 1960년대에 놓인 군사 작전도로가 모태이며, 당시 개통된 군사도로는 천은사, 성삼재, 노고단을 연결하는 순수목적의 군사용 작전도로였다 ,

이 도로는 점차 목재를 수송하는 기능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경 관광도로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확장되면서 해발 1090m에 있는 성삼재를 비롯 , 정령치와 달궁을 잇는 현재의 아스팔트길이 탄생했다

老姑壇이란 늙은 시어머니를 위한 제사터를 말하며 우리말로는 할미단 이라 한다,

老는 존칭을 의미이며 姑는 마고를 뜻하기도 해서 마고 할매를 위한 제사터라고도 한다,

마고는 인류 최초의 인간을 탄생시킨 여신으로 그가 사는 곳은 마고성 이라고 한다

원래 마고는 젊은 여성이었으나 오랜 전설 속의 여신이므로 마고할매라고 불린다 ,

원래 이곳은 옛날부터 지리산의 산신 또는 선도성모를 모시는 신앙지로 매년 제사를 올렸던 장소라고 한다,

이 제사터는 천왕봉 정상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노고단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선교사들의 별장터였던 노고단은 6.25때 벌어진 빨치산 소탕작전 때

전소되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임걸령

조선 선조 대의 좀 도둑인 林傑年은 지금의 시천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의 활동무대는 반야봉 일대였다고 한다,

그는 화개 장터에서 넘어오는 보부상을 털거나 인근 사찰을 털었는데,

연려실기술 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참 강성했을 때의 임걸년은 지리산의 모든 사찰을 털었다고한다,

이 고개는 그가활동한 장소라 해서 林傑嶺이란 이름이 붙었다

반야봉[般若峰]

전설에 따르면 천왕봉의 마고할매가 반야도사를 만나 혼례를 하였단다,

그러던 어느날 반야는 훗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서쪽으로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않고 불도를 닦았단다,

그후 그가 도를 닦았던 산은 반야봉이라 불리면서 남성미를 상징하는 산이 되었지만 , 생김새가 한없이 부드러워

여성성도 가지고 있는 산으로 알려졌다,

반야는 산스크리트어의 프라냐[prajna]를 음역한 것으로 불교 경전인 반야경 [般若經]

에 의해 알려진 명칭이다 ,

반야의 뜻은 , 절대 변하지 않는 완전한 지혜, 를 의미히므로 지리산에서 지혜를 얻는다, 라는

말은 반야봉에서 유래된 것이라 추정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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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산의 솔 잎이 푸릇푸릇 다함이 없으니

만번 죽어 마땅한 신이

이것으로 여생을 마치기를 원합니다 ,

-홍의장군 곽재우가 억욱한 귀양살이를 한뒤 다시

관직에 임명되었을때 사절하며 남긴말 -----

토끼봉

이봉우리는 반야봉에서 볼때 24방위 가운데 정동[正東]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에

해당하고, 卯는 토끼를 상징하기 때문에 토끼봉이라 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므로 토끼가 많이 살기 때문에 토끼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는 순전히 와전된 이야기 이다,

연하천[烟霞泉]이란 이름은 오래전 부터 전래된 이름이 아니라

구례의 연하반 산악회[현 지리산 산악회]에서 명명한 이름이다,

구름속에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연하천의 샘물은

사계절 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지역 자체가 늪지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항상 물에 흥건히 젖어 있다

형제봉

먼 옛날 두 형제가 이곳에서 불도를 닦던 중 지리산 요괴의 유혹을 받았단다,

요괴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두 형제는 서로 등을 맞대고 불도를 닦았는데

그 자세로 굳어져 지금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벽소령[碧宵嶺]

해발 1400m 부근에 위치한 이곳에는 보는 달빛이 너무도 희고 맑아 서 푸른빛으로 보인다 해서 벽소령이란 이름이 붙었다

선비샘

등산객들이 고개를 숙이고 받아 마신다는 선비샘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먼 옛날 이샘터 아래의 상덕평에 사는 어느 할아버지가 화전민으로 살았던 자신의 일생을 후회하며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양반 대접을 받길 원했다

이것이 한이 되었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덕평봉 밑에 지금의 샘터 위에다 자신의 묘를 만들어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훗날 이곳을 지나던 양반네들이 물을 먹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했는데 그결과 샘터위에 할아버지의 묘에 절을 하는

꼴이 되어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 졌단다

그 뒤부터 동네 사람들은 덕평봉에 있는 샘터의 이름을 선비샘이라 불렀다,

영신봉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영신사라는 사찰이다,

영신봉에서 남사면의 한참 아래쪽에 있는 큰 세개골 상단에 옛 영신사터가 있다

좌고대와 창불대, 가섭상이라 불리는 암석 봉우리는 지금도 남아 있다

신 동국여지승람은 영신사 좌고대에올라 네 번 절하는 사람은 성불을 이룬다는 이야기가

민간에서 전래되고 있다고 전하니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찾아가보자 ,

지금의 영신사 터는 음양수샘골에서 내려가거나 대성동의 큰세개골에서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수 있다,

세석평전

우리말로[잔돌고원] 인데

말그대로 잔돌 밖에 없는 고원지대라는 뜻이지만

먼 예날에는 제법 숲이 울창했다고 여러 문헌은 전한다

세석평전에 터를 잡았던 인물중 가장 최근의 인물은 우천 허만수 선생이다,

1916년 전주에서 때어난 우천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산의 매력에 빠진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의령 자굴산에서 토굴생활을 하던중 30대 중반의 나이로 지리산에 입산,

토굴생활을 전전하다가 세석평전에 초막을 마련하는데

이 초막은 훗날 세석대피소의 전신이 된다,

촛대봉

음양수 전설의 주인공인 연진처자가 낮에는 세석평전의 철쭉밭을 가꾸고 밤에는 죄를 사하기 위해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올리던 장소라 촛대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훗날 연진이 바위로 변했는데 그 전설을 증명이나 하듯 촛대봉에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삼라만상을 이루고 있다

장터목

지금의 산청군 시천면 사람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이 이곳에 올라 물물교환을 하면서 붙은 고갯마루 이름이다

제석봉

지리산의 고사목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제석봉의 고사목은

자연 그대로의 고사목이 아니라 1960년대에 있었던 대규모의 도벌 작업을 감추기 위해 산불을 내면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고사목이다

불교적 의미에서 살필때 제석[帝釋]은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임금을 말하므로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 밑에 제석이란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지극히 당연한 작명인 것 같다,

제석신[帝釋神]은 집안의 무사태평을 관장하는 신으로 무당들의 신이라고 하니 제석봉 북쪽

기슭에 있는 제석단은 조선시대 때부터 이름난 무당들의 산신제 장소였다,

통천문

천왕봉의 최종 관문인 통천문은 거대한 바위덩이 사이로 홈 처럼 구멍이 나있는데

사다리 없이는 오를수 없는 이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무사다리가 있었는데

매를 잡는 사람이나 승려들이 만든것이다

천왕봉

천길 낭떨어지를 끼고 상아빛 암반을 따라 정상을 향해 오르면

해발1915m 의 천왕봉 정상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큰 정기인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목격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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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컨데 천석 종을 보라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으리

만고의 천왕봉은

하늘이 울려도 오히려 울지 않는다

-남명 조식의 시에서 ----

[살아서 꼭 가봐야 할 지리산 여행]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