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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산,금원산,기백산

oldboy-1 2010. 9. 17. 19:30

기백산

거창에서 안의를 거쳐 용추사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바로 덕유산 장수사 일주문이 길손을 반긴다. 일주문을 지나 6.25때 불타버려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채 광장처럼 휑뎅그레한 장수사 절터를 지나면 바로 길 옆 오른쪽에 기백산 등산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이 지역 일대의 산행 안내표지판은 낡고 통일돼 있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친절하고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편이다.

   들머리에서 5~6분쯤 숲길을 걷다보면 소규모의 너덜지대를 지난다. 여기서부터는 계곡 오른쪽으로 난 길을 오른다. 계곡 왼쪽으로는 길게 너덜지대가 이어져 있다. 너덜지대에서 10여분 더 오르면 능선 안부에 서는데 도수골 초입을 들머리로 해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남쪽으로 거망산에서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능선 안부에서 등산로는 도수골을 오른쪽 아래에 두고 접어든다. 여기서 길 바로 오른쪽으로 꽤 아늑해 보이는 곳에 집터가 있다. 조금 더 가면 길 왼쪽으로 집터가 하나 더 나오고 무덤을 지난다.

   능선 안부에서 20분쯤 완만한 길을 따라 가너라면 문득 기백산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길은 북서쪽 방향으로 틀어져서 능선쪽으로 향한다. 5분쯤 가면 처음으로 계곡을 건너는 지점에 이른다. 아직은 단단하게 보이는 얼음장 밑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미약하게나마 봄의 숨결을 전하고 있다.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매섭기는 하지만 길은아늑한 숲속으로 이어지고 등뒤에서 비치는 햇살이 마냥 따사롭다.

   낙엽송 지대를 지나서 십여분쯤 가면 다시 계곡을 건넌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길이 능선쪽으로 향하면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계곡쪽으로 난 길에 표지기 두 세개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지만 그나마 빛바래고 낡은 것으로 보아서 요즈음은 다니지 않는 길인 듯 했다. 새로운 표지기들은 모두 능선쪽 길의 나뭇가지에 달려 있다.

   여기쯤 오면 숲 사이로 언뜻 기백평전 억새밭이 멀리 보인다. 산죽밭 사이로 난 길을 칠팔분쯤 오른 끝에 고개를 들어보면 기백산 정상이 보인다. 기백산 정상이 보이는 이 지점에서 능선 안부까지는 칠팔분쯤 더 올라간다. 능선 안부에서는 시영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능선 안부에서 10분쯤 더 오르면 무덤이 나오고 여기서는 거망.황석산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남동쪽으로는 지리산 능선이 장대하게 뻗어 있는 것이 보인다.

   능선길에서 바로 기백산 정상에 닿을 듯 하지만 꼭대기까지는 오십여분쯤 더 땀을 빼고 올라야 한다. 억새밭으로 이루어진 기백평전이 보이는 능선길에 서면 안의가 내려다 보이고 건너편 황석산의 공룡처럼 생긴 암봉과 피바위 절벽이 보인다. 황석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간 능선은 거망산과 월봉산으로 이어진다. 기백산 정상에 오르기 직전 칠팔분쯤 거리에서는 왼쪽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시루떡처럼 쌓여진 누룩덤과 금원산으로 이어진 능선길이 보인다.

   기백산 정상에는 안의산악회에서 89년 10월에 세운 소박한 정상 표지석과 아울러 세 개의 돌탑이 있다. 그러나 정작 건설교통부에서 매설한 삼각점은 파헤쳐져 표지석 옆에 기대서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기백산 정상에서 시영골로 내려가려면 금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야 한다. 누륵덤을 왼쪽으로 돌아서 난 능선길을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현성산과 지재미골, 유안청계곡, 한수동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산허리를 파고 든 임도가 아무래도 눈을 찌른다.

   정상에서 15분 거리에 규모는 작지만 암릉으로 이어진 또 하나의 누룩덤이 있다. 여기서 시영골로 내려가는 능선 안부의 사거리까지는 40분 걸린다. 이 능선길에서는 은신암이 아주 조그맣게 보인다. 월봉산쪽 아래로 두 갈래의 능선이 뻗어내린 가운데에 위치한 이 암자는 영락없이 새가 알을 품고 있는 듯한 지형에 그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 숨어 살았던 이는 바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 무학이다.


 


 

용추계곡 입구 보이는 산이 황석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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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물레방아

이곳 안심마을은 1792년 연암 박지원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하여 5년간 재임하면서 국내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시연하여 실용화 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물레방아는 함양의 전통물레방를 복원시킨 것으로 지름10.1m, 폭 1.9m로서 나무로 만든 물레방아로는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크며 이 물레방아를 이용한 전력생산으로 가로등을 밝히고 있다.

물레방아 시원지 복원기는 표지석 뒷편에 기록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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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모리(유래)

이 곳 돌 무더기는 임진란이 지나고 정유재란시 왜병을 물리치기 위해 이 고장은 물론 인근의 아낙네들 까지 힘을 합애 황석산성을 쌓을 돌울 아낙네들이 앞치마로 싸서 나르는 것을 보고 마귀 할멈도 합세를 하여 돌을 나르다 이 곳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있을 때 황석산성이 함락되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자 너 나 없이 그자리에다 돌을 놓고는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한다. 아녀자들과 마귀할멈이 흘린 눈물이 돌에 스며들어 돌과 돌이 붙어 지금과 같은 아주 큰 바위가 되었다고 전해오는 돌 무더기다. 이때 돌 무더기의 넓이가 수백평에 이르고 높이 또한 수십미터가 되었으나 도로 확장 등으로 훼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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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산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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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바위와 매산나 소

시퍼런 소의 건너편 암벽 위를 보면 길 쪽을 향해 뚫어질 듯 주시하는 매의 형상을 닮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매바위라 부른다. 이 매바위는 옛 조선의 도성을 터잡은 무학대사가 처음 찾아낸 바위다.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와의 절친한 관계를 시기한 정도전의 계락에 의해 무학대사가 되레 쫓기는 처지가 되어 어디든지 몸을 숨길곳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곳 계곡을 들리게 되었다, 헤집어 들수록 가경이라 거듭 탄복해 하면서 이 소앞에 당도했다. 이 때 무학대사의 머리위를 나르던 한 마리의 새가 갑자기 풀슾으로 숨으며 맥을 못추는 거였다. 대사가 그 연유를 퍼뜩 알아 차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사의 눈에 띈것은 큰 매였다. 매가 골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면 이 골작 어디에 꿩설에 속하는 길지가 있는 건 당연했다. 이렇게 해서 찾아진 곳이 바로 현재의 은신암 터이다.

'매산나 소'의 '매산나'의 유래는 지나는 행인들이 이 매바위를 향해 '매산나'하고 외치는 데서 비롯되었다, 즉 '매가 살았나'는 식으로 고함을 치면 암벽에 의해 울림되어 오는걸 '매삿다' 즉 '매가 살앗다'라는  대답으로 듣게 되었다.그리고 이 암벽의 바로 아래 아주 깊고 넓은 소를 매산나 소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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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사 주차장 멀리 일주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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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사 일주문

장수사는 지금으로부터 1500연년 전인 신라 소지왕9년 (서기487년)에 각연조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로서 지리산과 덕유산에 산재한 많은 사찰들을 말사로 거느렷으며 이곳 심진동계곡에만도 열개가 넘는 암자를 둔 대찰로서 계곡 어디에서나 낭랑한 염불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한다. 장수사 경내에는 대웅전, 산신각, 천왕문,명부전,서신당,동신당,사천왕문,일주문등으로 그 규모가 해인사에 버금갈 정도였다고 하며 이곳에 기거하던 승려만해도 항상 이백여 명에 달했다 한다, 그러나 강희19년(1680년)에 첫번째 화재를 입은 이후 2번의 화를 더 입었으나 그때마다 모두가 합심하여 복원을 하였으나 아쉽게도 6,25전란때 장수사는 물론 계곡마다 즐비했던 암자들은 소실되었고 일주문만이 현존되고 있으며 용추암을 복원하여 용추사로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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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사 일주문 옆에 서있는 이정표 여기서 기백산 정상까지 4.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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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사 터를 지나자 우측 산 기슭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의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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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산 정산 3.8k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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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산 정산 3.4km지점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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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산 정상 3.2k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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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산 정상 1.3km 지점의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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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타고 오르며 꿀밤(도토리)을 줍고 있는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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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산 정상 0.2km지점, 여기서 부터 조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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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황석산(입술같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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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향해 오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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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산과 그 넘으로 보이는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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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향하는 능선에 있는 누륵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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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하게 뻗은 금원산으로 향하는 능선, 그 뒤로 덕유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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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남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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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산 정상을 코앞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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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금원산과 누륵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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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돌부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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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표지석(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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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륵덤 정상에서 본 기백산 정상, 누륵덤에 오르다 무서워 오줌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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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륵덤을 건너 금원산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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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금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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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원산과 시흥골(사평)갈림길 우린 시간도 늦고 다리도 아파 금원산은 포기를 하고 시흥골로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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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골과 금원산 갈림길의 이정표 금원산 정상2.5km,시흥골 입구 2.9km, 기백산 1.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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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에서 1.7k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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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시흥골 입구) 1.4k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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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 1.3km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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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 1km앞둔 지점의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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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 0.5k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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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시흥골 입구)의 매점들, 멀리 은신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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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망령과 용추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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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사 입구의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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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시원한 용추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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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사 공사 한창이다.

이 사찰은 신라 소지왕 9년(487)애 각연대사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6,25동란때 소실되어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하여 1959년 재건하였다.주변 경관이 수려한 자연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장수사의 흔적을 간직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인 덕유산장수사 일주문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 되어 있으며 이곳 장수사에서 설파 상언대사가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놓고 화엄경을 강의 했던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추사 뒷편 용추계곡 상류에는 기백산군립공원과 용추자연휴양림이 있고 서북쪽 산 정상에는 정유재란때 왜구와 혈전이 벌어졌던 황석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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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사 우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네

버릴성은 오직 간택 뿐

밉다 곱다는 마음 없으면

탁 트이어 명백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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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사 앞의 용추 폭포

16 :27

돌아온 용추 일주문 앞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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